ⓒ photo by Laila World 더블린의 템플바
| 왜 아일랜드로 가게 된거야? |
어학연수 떠나기 전 까지는 여행을 잘 다니지 않았다. 일본 여행 정도가 전부였다. 학생때는 돈이 없었고, 일을 할 때에는 휴가를 오래 쓸 수 없어서 멀리 여행가는 걸 엄두도 못냈다. 19살, 우연한 기회로 유럽으로 9일 동안 다른 지역 친구들과 연수 겸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 때 느꼈던 감정들, 유럽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더 많은 책임감을 지게 될 서른(?)이 되기 전에 조금 더 자유롭게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어학 연수(라 쓰고 여행이라고 읽는다.)를 결정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0% (영어가 너무 싫었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영어 회화 수업 (Grammer in Use 로 실제 사용하는 영어 배우고, Active 한 영어 회회수업을 하는 종로 YBM의 수업) 을 들은 지 1년이 좀 지났을까. 이제 해외에 나가서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학연수 떠나기로 땅땅!
유학원에 가서 정보도 듣고 여러 나라를 비교하는 세미나를 들었는데, 뭔가 미국권은 무섭고 유럽여행도 많이 하고 싶어 유럽권을 가고 싶은데, 유럽권의 선택권은 단 두 나라, 영국, 아일랜드. 영국은 물가가 너무 비싸니 차선책으로 아일랜드로 떠나고 자주 영국은 놀러 가자. 라고 생각했다.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쉽게 쉽게 하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는 기다림의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데, 아일랜드 어학연수는 입국 후 GNIB 발급만 300유로 - 6개월 어학원 등록 기록과 3,000유로(?) 잔고가 있는 아일랜드 계좌/카드만 있으면 1년 비자를 발급해줬다. (지금은 8개월로 변경됨)
아래의 책은 아일랜드 어학연수 갈 때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어학연수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익힐 수 있는 책이라 손에 꼭 쥐고 아일랜드에 입국했던 추억이 있는 책이다.
www.coup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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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Laila World 유럽의 과일과 채소
| 일년 동안 뭐 하고 지냈어? |
크게 분류하자면 1) 어학원(FCE 자격증 포함), 2) 여행, 3) 아주 살짝 알바와 Oxfam에서 봉사활동 4) 취업스터디+구직활동 이 메인 액티비티였고, 한국에서처럼 친구들이랑 카페도 가고 밥도 먹고 연애도하고 요리도 하고 그랬다. (이게 아직까지 마지막 연애일 줄이야!)
내가 생각했을 때 1년 동안의 타지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요리 레벨 업' 이지 않을까 싶다.
친구들을 초대해서 한식을 차려주기도 했고, 매일 먹는 밥에도 변화를 주고 - 닭갈비, 찜닭, 떡볶이, 김밥, 초밥 까지 해먹었다. (대단해..) 식당에서 가서 식사를 하면 외식물가가 기본 15,000원 이상인지라 (13유로 이상) 부담스러웠다. 먹고싶은 건 많았고 장바구니 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한 경우도 많았다. 낙농업의 비율이 높아서 치즈와 우유가 정말 신선하면서 쌌다. 파스타, 시리얼도 많이 먹었고 아니 그냥 많이 먹었다.
한국 오기 전에는 뭘 하기만 하면 태웠는데, 아일랜드 다녀온 후엔 요리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그런데 한국오니 외식물가가 저렴해져서 그냥 다 사먹는다.. 하하 재료 다 사는게 더 비싸!
ⓒ photo by Laila World 한식 대접하는날
| 어학원은 학교처럼 공부하는 곳이야? |
다양한 나라에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통 유럽권 사람들은 2-3주의 짧은 일정으로 여름방학 휴가 + 영어공부를 하러 오는 것 같다. 보통 오전에만 수업이 있으므로 오후에는 자유롭게 여행도 가고, 쇼핑도 하러가고 자유롭게 보낸다. 아일랜드는 많은 펍들이 있으므로 술도 많이 마신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친구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체류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러 온다. 길게 체류하다보니 대부분 알뜰하게 살아가는 편. 문화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아서 제일 빨리 친해지는 친구들이 아시아 친구들이다.
6개월 동안 영어학원 다니는 기간 중에, 3개월 정도는 General 을 듣고, 나머지 3개월 정도는 FCE 시험반을 들었다. 첫날 보는 레벨테스트에 따라 반이 구성되고 해당 레벨이 끝나면 거의 대부분 다음 레벨의 수업을 듣곤 했다. 중간에 레벨을 더 높여 듣고 싶다고 한다면 상담 및 다시 레벨테스트를 보는 등으로 조절하는 것 같았다. FCE반은 숙제 (에세이나 문제풀이)가 많았지만 친구들도 좋고, 열정 넘치는 아이들과 공부하는게 좋았다. 다행히 시험도 합격해서 영어 자격증을 손에 쥐고 입국할 수 있었다.
| 여행은 어디로 갔어? |
아일랜드행의 주된 목적은 유럽 여행 이었다.
아일랜드 내 여행도 많이 다녔다. 1년 동안 살았던 더블린부터, 모허절벽이 있는 골웨이, 그리고 아일랜드의 부산 느낌인 코크까지. 북아일랜드까지 버스타고 투어다녀오기도 하고.. 영국은 두 번 정도 다녀왔다. 고맙게도 한국에서 부터 날아온 친구들 덕분에 풍족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여행지에서는 한국에서 온 직장인 오라버니들과 배낭여행객 아이를 중간에 만나서 함께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눴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나의 사랑하는 친구 지옹이와 2주 동안 함께 지냈다. 스페인도 일주일 동안 다녀왔었다.
ⓒ photo by Laila World 모허절벽
| 알바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 |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CV(이력서)를 작성하고 나서 학원 선생님께 감수도 받고 친구들한테도 보여줬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Oxfam 에서 봉사활동부터 시작했다. (판매직/카페 알바나 경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바리스타 자격증만 따고 감) 경력도 부족한데다 영어실력도 좋지 않았기에.. 그러다 좋은 기회로 동네 빵집에서 1주일 정도, 시티센터 카페에서 2주 정도 일했었다. 손도 느리고 혼나는 일도 많아서 적응하기도 전에 그만 두어야만 했다. 아픈 기억이지만 내가 부족했단 걸 인정하고 나니 그냥 더 편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는 바로 취업스터디를 꾸리고 IT 취업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교두보가 되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점. 들어가서 CV를 전달하고 싶은 가게가 있더라도 10분 이상 앞에서 서성인 적도 많다. 용기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이러한 점을 극복하고자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는 나를 생각하면, 그땐 더 힘들었겠구나 싶기도 하다.
ⓒ photo by Laila World 16유로 팁받은 날
| 취업 스터디,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었어? |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연말에 가슴앓이를 좀 오래 했다..) 다시 기운을 차린 건 1월 쯤이었다. 벌써 4년 전이라니!
경력있는 IT쪽에 지원하면 어떨까 했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본사가 아일랜드에 위치하면 법인세를 저렴하게 해주는 법이 있어서 페이스북, 애플, 블리자드 같은 회사들도 아일랜드에 위치해 있다. 보통 큰 역할을 하는 경우 보다는 Call Center 가 위치해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지원할 수 있는 IT회사들은 많았다.
프랑스 친구와 막무가내로 아마존이던가 페이스북 회사 가서 관련된 사람 만나러 가기도 했었는데 아무도 못만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몇 개월 만에 취업 했다. 역시 EU 국가라 다른건가 싶고 부러웠다.) 생각해보니 나도 한국에 가면 취업하기는 한결 수월하고 외국분들이 취업할 때 당연히 제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되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유학생 모임 커뮤니티에 스터디 모집 공고를 올리고 처음엔 7명 정도 만나서 현상황 및 앞으로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같이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공유했다. 좋은 아이디어 들이 많았다. 그 중에 마음이 급한 3명 (나와 1명의 오라버니, 1명의 동생) 은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취업박람회도 가고 헤드헌터 회사도 함께 방문했다. 개발자 Meetup 에도 함께 나갔다.
처음엔 이게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나 말고 두명은 일자리 구해서 현재까지 아일랜드에서 잘 살고 있다. 나도 한국와서 바로 외국계 기업에 취업했으므로 80% 는 성공한 것 아닌가?
함께 하는 것의 힘을 체감했다.
ⓒ photo by Laila World 집이 비슷하니까 문색을 달리 했다는 아일랜드 썰
| 어디서 살았어? |
아일랜드 처음 3주는 학교 근처에서 홈맘이 있는 홈스테이를 했고, 그 이후엔 6구역 리스마인 근처에서 한국친구랑 쉐어룸을 썼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6구역 근처의 아파트에서 거실을 개조한 정말 Tiny한 공간에서 살았다. 그러나 거실을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서 답답하지 않았다.
아파트에선 옆방에 사는 5살짜리 그러다 아파트먼트 내 거실을 개조한 작은 방에서 나머지 8개월 정도는 지냈다. 거기서 만난 옆방 소피아(5살, 여아)와 절친이 되었다. 거의 매일 소피아랑 놀면서 영어도 하고, 유튜브나 영화 같이보면서 놀았다.
| 돌아오고 나서 |
1년 내내 일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쓰고 왔다. 한국에서까지 놀면 안될 것 같아서 아일랜드에서 준비한 이력서를 가지고 돌아가기 전 부터 외국계 회사에 지원했다. 그러다 운 좋게 2주 만에 서울역 근처에 있는 회사에 출근하게 되었다. 돌아온 지 벌써 3년 정도 되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재밌고 새롭고 배울점도 많고.. 당분간은 일을 그만둘 것 같지는 않다.
1년 동안 재밌는 일만 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에 내가 느끼고 고민한 것들이 지금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인 자양분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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